Youth Hostel Playa에서 겪은 에피소드
부킹닷컴에 안 나오는 걸 보니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은 것 같다. 참 더럽고 찝찝하고 더웠지만 정말 재밌는 숙소였기에 아쉬운 마음이 든다.
EP 1. 글로벌 아이돌 대접을 받다
살면서 그 정도로 사랑받는 경험은 없을 것 같다. 여자 게스트가 나 밖에 없기도 했고, 아시안도 나뿐이었다.
조식 먹을 때 씻지도 않은 부은 얼굴로 가는 게 배낭여행자 국룰인데 눈 뜨자마자 화장하고 내려갈 정도였다.
공항 패션에 신경 쓰는 연예인들의 팬서비스가 이런 건가.
아무도 안 믿겠지만 진짜 멕시코, 아르헨티나, 이탈리아 남자들이 쫓아다녔다.
하지만 난 차갑고 도도한 코리안이다
EP 2. 쁠라야 싸구려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은 칸쿤 호텔 주방장표 타코
한창 여행에 지쳐서 울적하게 식당에 앉아있으니까 한 멕시코 아저씨가 표정이 왜 우울하냐고 타코를 만들어주셨다. 여행자인 줄 알았는데 근처에 있는 칸쿤 호텔 주방장이란다. 어쩐지 맛있더라.
알고 보니 내가 지내던 초저렴 게스트 하우스는 가격만 싸고 컨디션이 매우 안 좋기 때문에 -에어컨도 안 나온다- 장기 투숙자들이 많은 숙소였다.
EP 3. 행복과 슬픔, 그리고 감동 파괴
역시나 밤에 울적하게 앉아 있다가 친해진 아르헨티나 뮤지션 루시아노. 당시에 겪은 힘든 일들을 얘기하자 한 마디 툭 말했다.
"We enjoy happiness,
but we learn from sadness."
루시아노의 말을 곱씹으며 슬픔 자체보다 그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를 생각했다.
그러나 감동은 자신이 한 말에 감탄한 루시아노 때문에 깨졌다.
"우와! 내가 한 말이지만 정말 멋진 걸?"
종이를 꺼내서 자기가 한 말을 휘갈겨쓰는 루시아노였다.
EP 4. 마약으로 오해한 아르헨티나 마테차
그렇게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둥이를 들이밀길래 '한국인을 만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'라고 혼내줬다.
그러자 갑자기 이것 좀 마셔보라고 건네주었다.
음. 생긴 게 너무 마약 같기도 하고 대화의 맥락도 이상해서 난 물 마시고 싶다고 돌려서 거절했다.
----- 유교걸의 여행 철칙은 No 마약이다.
"이거 마리화나 아냐" 루시아노, 이 눈치 빠른 녀석이 말했다.
"사람들이 생긴 것만 보고 마약이라고 착각하는 데 이건 아르헨티나 마테 차야.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이 한 잔에 뜨거운 물을 계속 채워가면서 차를 마셔. 그리고 함께 대화하는 사람들과 빨대를 공유하면서 계속 이야기해. 이게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대화하는 방식이야"
마테차에 담긴 이야기는 꽤 흥미로웠다.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 한 명이 잔을 다 비우면 그다음 사람이 그 잔에 다시 물을 채워 마시고, 그렇게 한 바퀴가 다 돌 때까지 대화를 하며 이어간다고 한다. 아르헨티나의 차 문화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생겨난 게 아닌가라는, 그런 생각이 들었다.
루시아노의 거듭되는 제안에 고민하다가 살짝 마셔보자 녹차와 비슷한 맛이 났다.
"진짜 차네?"
"당연하지!"
솔직히 루시아노 생김새가 약에 쩔은 뮤지션처럼 생기지만 않았어도 이런 오해는 없었을 거다. 이건 네 잘못이다.
EP 5. 멕시코 이발소에서 머리 자르기 - 망함
남미 생활이 7개월이 넘어가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머리 상태가 됐다. 미용실은 따로 없고 이발소를 가야 한다고 해서 고르고 고른, 이탈리아 사장님이 운영하는 이발소를 방문했다.
들어가니깐 온통 남자 머리와 턱수염 사진밖에 없다. 물론 손님들도 다 남자여서 조금... 쑥스러웠다.
아무튼 결과적으로 내 머리는 망했다. 저 뭉툭한 끝을 보라. 다시는 남미에서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.
EP 6. 멕시코에서 초대받은 아르헨티나 우정의 날 파티
그렇게 친해진 아르헨티나 친구들과 함께 방문한 남의 좋은 게스트 하우스 우정의 날 파티.
남미 3대 잘생긴 국가 중 하나인 아르헨티나 파티답게 훈훈한 아르헨티나인들이 많았다.
루시아노가 초대해서 따라온 건데 내가 혼자 너무 잘 놀자 루시아노가 조금 서운해했다. 라티노 답지 않게 왜 이래.
코리안의 매력에 빠져버렸구나?
EP 7. 밤에는 데낄라와 우노 파티, 낮에는 물통 수영장 파티
녀석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즐거워진 바람에 길어진 싸구려 게스트하우스 라이프. 장기 투숙자들과 스태프들과 친해져서 매일 밤 소소한 파티를 즐겼다.
플라야 클럽 투어를 함께 다니기도 하고, 밤에는 끝나지 않는 우노 게임-벌칙은 데낄라 원샷,
살사&바차타를 추면서 멕시코의 밤을 즐겼다.
멕시코 더위에 지쳐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해서 나눠주는 친절한 사람들이었다. 맛있는 걸 주는 사람은 언제나 좋은 사람이다.
한편 이 숙소에 수영장이 있다고 해서 물어봤더니 수영장이 아니라 무슨..... 대형 물통이다. 거기서 아르헨티나 녀석들과 뜨뜻한 물에서 첨벙거렸다.
EP 8. Good Bye, Playa del Carmen
플라야 델 카르멘에 지내면서 다양한 여행지를 많이 갔는데 가장 기억나는 곳이 이 숙소일 줄은 몰랐다.
마지막 날이 되자 루시아노는 날 바닷가에도 데려가 주고 기타도 쳐주고 노래도 불러줬다.
시작은 플러팅이었지만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다. (루시아노의 플러팅이 대실패 했단 뜻이다.)
난 아끼던 가죽 팔찌를 선물로 줬고, 가난한 뮤지션 루시아노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(?) 나무껍질을 줬다.
넌 마지막까지 미심쩍은 물건을 주는구나...... 나중에 칠레 친구가 그 이야기가 진짜라고 해서 그제야 믿었다.
남미 여행 1년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지만,
가장 배낭 여행자 같은 여행을 했던 순간이었다.
길 위에서 또다시 만날 수 있기를.
https://hostelplaya.jimdofree.com/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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